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터널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2017.11.25 작성글
2021.08.12 추가글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의 특성과 차이는?)
고등학생 때 엄마가 육성으로 읽어준 적이 있는 구절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엄마는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때에는 정말 와.. -할 정도로 감동 받았는데, 어쩐지 글로 보니 그 때 만큼의 감동은 없어 아쉬웠다.
1) 영화화한다고 생각하고 장면 하나하나를 그림처럼 그려나가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소설이 묘사가 많고 예쁜 글인데 나는 제대로 못 읽은 것 같다. 풍경을 그리는 일보다 인물들의 관계에 주목하다보니 묘사에 집중하지 못한 듯. (그러면 두번 읽으면 된다)
2) 고마코는 내 입장에서는 좀 미친사람 같았다. 회까닥 하니까.
술 먹고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건 저기도, 저때도 똑같구나 싶더라. 처음엔 취한척인줄 알았다.
3) 요코와 고마코
처음엔 제대로 안 읽고 기차녀가 고마코인 줄 알았다. 그래서 어쩐지 두 캐릭터가 너무 매치가 안되서, 시마무라가 기차에서 가졌던 환상이 깨지는 건 아닐까 싶었다. 다른 사람인 걸 알고는 요코를 실제로 보고난 후에 고마코에 대한 흥미가 옮겨가는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이 (=의외로) 그건 아니었다.
요코와 고마코의 관계는 아직 잘 모르겠다. 고마코는 요코에 애증을 느끼는건가? 요코는 고마코를 사랑하나? 시마무라가 요코 얘기를 할 때 고마코가 질투할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단순한 관계가 아닌것같다.
나는 아직 공감 못 할 관계의 양상이 있는가보다..
4) 마지막 장면은 강렬하긴 하지만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급 추리소설이 이어져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경련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시마무라처럼 다리가 떨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글에 힘이 있다는게 이런거구나.
5) 기승전결이나 눈에 띄는 사건 없이 부드럽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래서 시골의 눈 마을이 주는 평온함과, 적막함에서 오는 안정감이 더 잘 전해져온다. 오히려 그 평범함이 나를 설국의 마을에 있게 한다.
6) 동양적이다. 그게 어떤건데?라고 물으면 설명하기 힘들지만 동양적이다. 특히나 일본스럽다. 일본적이라 하면.. 나에겐 정반대의 두 이미지가 떠오른다. 첫째는 고즈녁하거나 간질간질한, 막 해가 져가는 시간의 느낌. 둘째는 주온, 에반게리온, 퍼펙트 블루처럼 싸이코틱 하면서 인간 본연의 깨름칙함을 잘 유발하는 느낌. (우안, 좌안은 어디에 해당되나.. 너무 옛날에 읽어 잘 기억은 안나고 느낌만 남아있는데 둘 다 였지 싶다.) 이 책은 물론 전자겠지.
cf. 한국적인건 어떤 느낌일까. 이미지로 표현하면.. 현실적이고 현실적이어서 오래된 침낭같이 사람 냄새나는 문학?
7) 우리나라 문학이 외국어로 번역되면 (황해-노란바다-Yellow Sea의 충격) 그 맛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처럼 이 책 역시 일어가 주는 느낌을 오전히 담아내지는 못했겠지. 그래서 첫 문장의 감동도 덜했겠지.
신기하다. 아무리 완벽하게 번역을 해도. '그 말'만이 줄 수 있는 느낌이 있다는게.
+) 2021.08.12
최근 일본 문학과 한국 문학의 차이는 뭘까 생각해봤다. 박경리 선생의 일본 문학에 대한 논평 인터뷰를 보고 난 후,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두 국가의 문학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누군가 한국 문학은 어떤 느낌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사람 사는 얘기야. 특히 그 시절 한국의 사람들 사는 얘기" 라고 답할 것 같은데
이와 비교하면 일본 문학은 "'그(주인공 이름)'라는 특정 캐릭터의 이야기"라고 설명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문학의 분위기는 강경애의 <인간문제>를, 일본 문학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염두하고 떠올렸다.
한국 문학은 뭔가 한 문화가 공유하는 보편적 시대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 곳곳을 눅눅하게 들여다보면서 결국에는 '이 사람들도 나와 이런 점은 똑같구나. 인간은 다 어느 정도 닮았구나'하는 보편적인 감상과 위로를 받는다. 반면 일본 문학은 특수한 환경에 처한 특정 인물의 삶과 그를 둘러싼 사건을 따라가면서 '이런 감정도 있구나. 이런 감상도 있구나'하고 관찰과 몰입을 동시에 하게 된다.
물론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문학 저편에 깔린 문화와 역사적 감수성에 공감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거칠게 정리하자면 보편성(한국 문학)과 특수성(일본 문학)의 정도의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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