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 리뉴얼 - 시위대 관찰 vs 시민 관찰
+) 어그로 끄는 제목 짓는 법을 연습해야 하는데 .. 여전히 노잼 제목인 것을 안타까워하며 글을 시작해보겠읍니다..
지난 번 광장 시리즈로, 시위와 축제를 비교하는 글을 썼는데 그 때 시위가 시위라는 행위 자체로 만족하고 끝나는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관철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축제의 양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었다.
모두의 광장을 자신들의 밀실 마냥 점유하고 불편을 끼치는 배타적인 행위가 아니라,
시위 아젠다에 관심 없던 일반 시민들도 열린 마음으로 참여하고 메시지를 궁금해하게 만드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맥락이었다.
최근 광화문 광장의 공사가 드디어 끝나 재오픈되면서,
광장과 시민들 그리고 광장과 시위대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관찰해봤다.
1) 광장과 시위대
바야흐로 2022.8.15 .. 겁도 없이 광화문 광장에 갔다가 아포칼립스를 맛보고 시위에 대한 중립적인 관점을 포기했다.






전국에서 수학여행 온 느낌으로, 새문안교회 앞에 정차된 수많은 관광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지역명이 써진 깃발을 따라 광장으로 집결한다. 나와 일행은 교보문고에서 포시즌스 호텔로 가야 했는데, 경찰들이 인도를 따라 펜스를 치고 길을 막고 서있어서 횡단보도를 이용할 수 없었다. 경찰에서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다시 교보문고 쪽으로 가서 일민미술관 방향으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그 쪽도 길이 막혀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아포칼립스 그 자체였고 태극기와 성조기가 펄럭이며 얼굴을 수차레 스쳐가는 와중에 법적소음기준을 훨씬 상회하는 데시벨의 연설 소리와 그를 따라 구호를 외치는 수백명의 사람들 목소리가 스테레오로 귀에 때려박혀 울려퍼졌다. 지상으로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교보문고 지하를 통해서야 겨우 길을 건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상의 대체로써의 지하공간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기 때문에 조만간 서울의 지하공간에 대해서도 포스팅해야겠다) 항상 로비를 자유롭게 개방해두던 포시즌스도 이례적으로 메인 문을 닫고 직원이 회전문 앞에 서서 나름의 스크리닝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화장실을 쓰려는 수 많은 시위군단을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나저나 방음이 훌륭했다)
이 때는 광화문 광장의 리뉴얼이 끝났을 때였는데,

광장이 길 중앙에 섬처럼 떠있던 과거에는 모든 시위대가 가운데 광장을 목적지로 삼고 이동하게 때문에 광장 양 옆 길이 모두 동일한 수준으로 복잡했다면,
리뉴얼 후에는 오히려 광장이 붙어있는 (그림 상의) 왼쪽 길이 광장과 멀어진 오른쪽 길에 비해 훨씬 병목현상도 적고 밀집도가 덜해졌다.
물론 밀집도와 병목이 적은 이유는 경찰이 오른쪽 길에서 광장이 있는 왼쪽 길로 가는 도로를 차단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아마도 광장으로 가는 길을 막으려는 의도였던듯) 일반적으로 시위의 본거지인 광장히 훨씬 복잡할거라는 예상과 달리 막상 광장 위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다. 차를 타고 광화문을 빠져나갈 때에도, 광장이 있는 왼쪽의 도로가 훨씬 평화로워서 포시즌스 호텔 -> 새문안교회로 가는 남산쪽 길을 통해 빠져나왔는데 생각보다 길도 막히지 않고 수월했다. 물론 교보쪽 도로는 여전히 무법지에 아포칼립스였다.
1-1) 광장, 시위와 축제
첫 문단에서 '마치 수학여행을 온 느낌'이라고 했는데, 이번 시위는 참여자들에게는 서울거리예술제급의 축제처럼 보였다는 점에서(내 최애 거리축제라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같은 사이트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네요..) 광장을 사용하는 시위와 축제의 양상이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이 한층 강화됐다. 연설 사이사이에 공연을 하고, 전국 노래자랑처럼 일반 참여자들이 올라와 자녀와 함께 (초등학생 정도되는 자녀가 성조기와 태극기를 열심히 흔들며 엄마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공연을 하는 모습은 사실 거리 축제 그 자체였다. 물론 시위와 축제의 한 끗 차이인 '배타성'의 측면에서,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에게 너무 배타적이고 그게 너무 심해서 폭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기 때문에 진짜 축제는 될 수 없다.
1-3) 새로운 광화문 광장과 시위대
결과적으로, 광장이 가운데에서 길 한쪽으로 붙으면서 시위대의 '집결지' 역할은 덜 해졌지만 양 옆 길의 밀집도와 혼잡도의 불균형이 생겼다. 또한, 광장 위에 분수대나 의자 조형물 등 여가적인 요소를 첨부하면서 시위대들도 광장 위에서는 여유롭게 앉아서 쉬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메인 연설 사이트(광화문 빌딩 앞 대로)를 생중계해주고 있었고 시위 참여자들 대부분이 고령이었기 때문이기에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지만 리뉴얼 전에는 메인 광장 위에 서있었을 열성분자들이 오히려 광화문 빌딩 앞으로 이동하고 광장을 비워두었다는 점에서 변화가 생겼다.
2) 광장과 시민
22.8.15 광화문을 겪고 광화문 광장 트라우마가 생길 뻔 했지만 잘 이겨내고(인간은 망각의 동물) 20일에 다시 그 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광장이 다시 시민의 것이 되어 있었다.




확실히 리뉴얼 전과 달라진 점은 광화문 광장의 '길'로서의 정체성이 덜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광화문 광장에 앉아서 쉬는 사람보다 그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광장이 아닌 거대한 길이었던 것이다. 도로 중앙에 섬처럼 떠있고, 주변에는 거대한 공공기관 건물 외에는 볼 것이 없는 휑한 공간에 앉아서 시간을 보낼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리뉴얼 후에 확실히 달라진 것은 광장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었는데, 분수에서 물놀이가 가능해지면서 어린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장소가 됐다.

의자도 길 가장자리를 따라 일렬로 배치되어, 볼 것이라곤 위인들의 동상과 정치 운동 부스 뿐인 광장 가운데로 시선이 향하도록 배치되었던 과거와 달리 이용객이 원하는 방향을 선택해 앉을 수 있는 덜 정형화된 좌석으로 바뀌어서인지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사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섬처럼 도로 중앙에 떠있던 과거에는 '굳이' 횡단보도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길을 걷다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는 길의 연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광화문 광장의 '거대한 길'로서의 정체성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확장됐다. 어차피 주변이 거대하고 폐쇄적인 고층 건물로 둘러싸인 이상 광화문 광장은 이상적인 광장의 역할(폐쇄적이지 않은 휴식과 머무름의 공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억지로 다른 광장들처럼 사용하려고 하면 더 부자연스럽고 비효율적이었을 텐데 그냥 아싸리 '아 이미 길처럼 쓰이는거 길의 연장선으로 만들어서 유동인구를 늘리고 그래도 광장이니까 중간에 정체해서 즐기고 쉴 수 있는 장소로 바꾸자'는 전략이 맞아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3) 나가며
리뉴얼된 광화문 광장의 시위대 버전과 시민 버전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광화문 광장은 언제든 시위대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준다는 점에서 진정한 시민들의 여가 공간이라는 인상을 주지는 못하지만, '도로 위 섬', '거대한 길'로서 존재하던 과거에 비해 훨씬 가족적인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변화였다. 시위대의 관점에서도, 내가 본 것이 참여자의 나이대와 규모의 측면에서 너무 이례적이고 극단적인 시위였기 때문에 (개무서웠습니다) 시위대가 새로운 광장을 사용하는 양상은 좀 더 여러 케이스를 살펴봐야겠지만, 그들에게도 변화된 광장은 휴식의 장소가 된 것 같았다.
또한 이번 시위를 위해 전국에서 찾아와 연대하고 공연을 즐기는 모습은 축제 그 자체였다. 광장에서 발생하는 시위와 축제는 그 양상이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과, 진정한 축제는 배타적이지 않고 모든 행인에게 열린 즐거움을 줘야 성사된다는 생각이 한층 강화되는 경험이었다.
+) 시위 자체에 대한 궁금증
그나저나 그리스도와 주사파척결이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
시위 연설에 목사들이 연달아 나와서 무슨 아젠다로 나온건지 너무 궁금했는데, 너무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오히려 한 마디도 못 알아 들었다.. 또 연설에는 젊은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왔는데, 청자 대부분은 고령의 노인이고 사회자가 연설자를 소개하면서 '젊은 사람들도 지지한다'는 맥락의 말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 말을 정말 믿고 공동체적 든든함을 느낄 사람이 실제로 많으니까 그런 연출을 하는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