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채식주의자 / 한강

Ipse! 2021. 8. 12. 00:35

2017.11.15 작성글

 

1) 기시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물구나무를 서며,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영혜를 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고등학교 교과서인지 사설 모의 고사인지.. 아내가 나무가 되어버린 작품 (제목을 아시나요..)이 계속 생각났는데, 그 또한 한강 작가가 썼다는 걸 알고 납득할 수 있었다. 아내가 나무가 된 작품은 제목은 기억나지 않아도 내내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나는 한강 작가의 글을 어릴 적부터 좋아했나보다.

2) 작가의 이름
위녕, 한강 .. 작가 부모를 둔 사람들은 이름도 참 여운 있다.
cf.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3) 지인의 평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자 지인 A는 이 책이 인간 본성의 암면을 밑바닥까지 보이고 있기 때문에 불쾌할 수도 있을 거라 했다.
처음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A가 말한 불편한 인간 본성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지 못했었다. 설마 처형에 대한 욕망이 포함되는 거라면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심리, 비슷한듯 다른 새로움에 대한 반응.. 이라고 나는 해석했다) 아직은 그런 마음이 보편적 본성이라고 부를 정도로 인간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책을 읽는 도중에 간간이 멈춰서 내 과거를 회고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A는 바로 그 지점을 말한게 아닐까 싶다.

4) 권태 
"현실과 일상에서 문득 찾아오는 권태"

마치 멀쩡히 길을 걷다가도 이 세상이 나 없이도 잘 돌아갈 텐데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

5) 자식, 삶의 원동력 ?
한강 작가는 자식이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인혜가 살아간다는 것에 밀려오는 권태와 회의를 느낄 때 아이 지우가 있어 견딜 수 있었다는 부분을 읽을 때였다. 언젠가 엄마가, 평생 독신으로 살고 싶다는 내게 해준 말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그치만 아이가 없는 사람도 또 다른 무언가에서 삶의 동력과 기댈 곳을 찾을 것이다. 인간은 의미부여가 되었기 때문에 살아간다기 보다는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의미부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6)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이데올로기를 비껴가는 행위는 행위자에게 날카로운 상처를 입힌다"
두 동서는 모두 일상의 트랙에서 벗어날 뻔했으나 (그게 처형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표현되는 게 불쾌감을 주지만 / 게다가 만약 그들이 실제로 처형과 부부 사이였다면 원래의 아내에게 똑같은 원리로 끌렸으리란 걸 예상할 수 있어서 더더욱..    *물론, 전혀 다른 모습보다는 변주ㅡ닮은 듯 다른ㅡ것에 더 끌린다는 것은 인정한다)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도피 vs 저지르기]

 

두 자매 또한 비슷한 심리적 상황에서 대조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피ㅡ영혜의 피는 생생하게 분출되고 솟아올라 밖으로 흐르지만, 인혜의 피는 안에서 잦아드는 숨어드는피. 삶의 고통을 대우하는 두 인물의 태도와 상응한다." / ! / 이걸 두 사람이 피 흘리는 장면을 보며 먼저 알아차릴 수 있었다면 더 재밌었을 텐데 아쉽다. 소설은 "IS(A는 B다, 라는 직유법)"를 쓰지 않는다는 걸 다시 깨달음

7)
꿈. 무의식. 죄의식의 발현.
"영혜는 꿈의 기저에 분명히 자리 잡아 있던 과거의 기억들, 즉 죄의식으로부터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벗어나고자 했다"

영혜를 물었다는 이유만으로 오토바이에 묶여 눈이 뒤집히고 거품을 토할 때까지 달리다 죽어 먹힌 백구. 경악에 가득 차 이 대목을 읽어내려가다 '백구의 눈을 오히려 부릅뜨고 마주 보았다. 감히 날 물어?' 부분에서 멈췄다.  내 신경을 자꾸 건드리며 날아다니던 파리를 약을 쳐 죽일 때, 흰 약 거품 속에서 발버둥 치며 괴로워하고 온몸을 뒤트는 모습을 관찰하며 조금 미안하긴 해도 내게 스트레스를 줬다는 이유로 살생을 정당화할 때 늘 하던 말이었다. 백구와 파리는 엄연히 다를지 몰라도, 내가 경악해 온 이맛주름을 찌푸리고 읽은 백구의 상황과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그때의 나와 완전히 다르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8)
인혜가 영혜의 남편을 부정적으로 회고하는 것.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영혜의 남편은 더더욱 비윤리적이고 비판적으로 회고된다. 영혜를 돌보는 일이 힘들어질수록, 돌보기를 거절한 사람을 비난하고 미워해야 견딜 수 있는 걸까.

근데 동서2도 왜 그를 부정적으로 회고하지?
연정에 따른 질투는 전혀 아닐 테다. 어찌 되었든 그는 '무리도 아니지'라는 식으로 동서의 결정을 이해하면서도 동서의 인간성과 평소 인상마저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떠올리고 있으니... 진짜 인상이 안 좋다는 설정이었을지도ㅎ

9) 명명의 폭력성
"범법자들을 부르는 수많은 세부 명칭이 있는 이유는 그들을 법의 어휘로 호명할 때 그들이 지닌 불온성이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 순화되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라는 명명은 영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것.
영혜의 행동은 일반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당혹스러운 것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는 그녀의 불온성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바꾸려고만 했다.
나는 너무나도 쉽게, 명명 행위가 지닌 힘을 망각한 채 말하고 재단하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