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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후기] PKM 갤러리 / Shin Min Joo , Peppi Bottrop (+블루보틀 삼청동, dainworks)

Ipse! 2021. 3. 6. 04:07

PKM 갤러리 (삼청동)

Feb. 17 - Mar. 20, 2021

\0 (사전예약)

 

 

내가 좋아하는 갤러리 중 하나인 PKM, 공간 자체가 가진 분위기도 좋고 전시를 다 보고나서 주변을 산책하기에도 좋은 위치다. 주로 유명/신진 작가의 개인전을 기획한다.

예전에는 보러 갈 전시를 고를 때 전시 하나하나의 내용을 살펴보고 정했는데, 실패하지 않는 갤러리들 몇 개를 정해두고 나니까 그 곳들의 전시는 믿고 보면서 탐색 비용을 줄일 수 있게되었다. 사전 계획이 중요해서 폭풍 검색을 하지만 검색 과정 자체를 스트레스로 여기는 나에겐 아주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 

 

 

이번 전시는 두 명의 작가의 개인전을 본관, 별관에서 각각 볼 수 있었다. 두 작가 모두 이번에 처음 접했다.

 

1) 작가가 두 명인데, 어떤 기준으로 기획한걸까?

두 작가의 그림은 색감이나 표현 방식에 있어서 매우 대비된다.

신민주 작가는 존재감이 강한 색을 사용하고, 물감을 덧입히고 밀어내고 또 덧입히는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그래서 여러 색깔의 대비나 조화가 두드러지고, 질감이 무거운 느낌을 준다.

 

반면 peppi Bottrop은 연탄 질감이 나는 흑색의 선으로만 표현한다. 캔버스의 빈 공간을 그대로 살려두었기 때문에 그 위로 그어진 흑색 선과 대비를 이루는 흑백과 여백의 이미지가 특징이다. 

 

 

2) Shin Min Joo

신민주 작가의 작품만 배치된 본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두 그림.

초록빛과 붉은빛의 색깔 대립이 인상적이었다. 불화에서 많이 쓰이는 색 조합이라 바로 여러 탱화가 떠올랐다.

초록색과 붉은색의 대비를 애용하는 불화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색과 조합이어서, 바로 엄마 생각이 났다. 집에 엄마가 그린 불화도 이 두 가지 색을 사용해서 그렸는데, 집에서 보고 듣는 것의 세뇌력이 얼마나 강한지 새삼 느꼈다.

 

두번째 그림을 보면서는 꽃이 생각났다. 암술이 우뚝 쏫아있고 그 주변으로 꽃잎들이 아래로 쳐진 느낌. 

아마 참나래꽃을 떠올린 것 같다. 이 작품도 다홍색과 초록색이 함께 쓰였다.

 

바다나 어항 속에 있는 느낌. 며칠 전에 유튜브에서 해외 유튜버의 익사 체험 영상을 봤었는데, 포스팅을 쓰면서 이 그림을 다시 보니 그 영상이 생각난다. 실제로 봤을 때는 푸른빛이 더 강하게 다가와서 그런 음침한 생각은 안들었는데, 사진에서는 회색과 탁한 주황색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칠하고, 밀어내고, 또 칠하고 덧입히고 지우고 다시 칠하고...

작가는 이런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진행하면서 작품을 완성해나간다고 한다.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이전에 칠한 물감을 지우듯이 밀어낸 자국이 보이고, 그 위에 새로 물감을 올려 칠하고 또 밀어낸 자국도 보인다. 캔버스 위에 이 그림이 그려진 과정과 흔적이 연대기처럼 남아있는 것. 

 

요즘들어 느끼는 거지만, 내가 과거에 했던 경험과 말과 행동이 다 축적되고 남아서 현재에 계속 영향을 준다. 과거에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했던 경험이, 지금와서 생각보다 더 중요한 커리어로 남아있기도 하고. 또, 없애고 싶은 과거의 경솔한 흑역사도 가끔씩 회자될 때마다 몸둘바를 못두게 한다. (cf. 배우 이병헌씨 핸드폰 보면서 '아, 안돼!' 하는 짤) 

처음의 붓질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어서 완성된 결과물만 접할 수 있었다면 완벽한 완성품일수는 있어도 매력은 줄었을 것 같다. 한 번 칠하면 물감을 밀어낼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지울수는 없다. 그림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그 점이 참 재밌다고 느꼈다.

 

 

3) Peppi Bottrop

광산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이해할 수 있었던 정체성 강한 화풍..

사실 갤러리 사이트에서 이 작가의 그림을 보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선을 거칠게 사용한 점이 매력적이었고, 사실 처음 보자마자 동양화스럽다고 느껴서 흥미로웠다.

 

이 작품은 원 모양이 많이 보여서 재밌었다. 커다란 달과 식물의 잎 같기도 하고, 달로 보이는 큰 원이 중심을 잡아주고 윌리를 찾아라처럼 작은 원들도 곳곳에 숨어있는 점이 좀 흥미로워서 앞에 서서 혼자 원찾기 게임을 했다. 원과 원과 원이 연쇄되는 모양에서 김환기 화백의 달과 항아리 그림이 떠올랐다.

 

그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배경의 격자 무늬다. 사실 배경이라고 칭하기 애매하지만 격자 무늬가 자주 보인다. (보이시나요) 나는 사실 두번째 그림을 보고 격자는 창틀이고 나머지는 창 너머로 난 겨울 나무의 가지이거나, 네모 패턴의 외벽을 가진 건물 위로 타고 오르는 덩굴을 떠올렸다. 마음 속으로 <마지막 잎새>라고 이름도 정했다. 너무 직관적인가? 상상력이 풍부한 다른 사람들은 뭘 떠올렸을지 궁금한데, 어찌됐든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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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관 큰 창. 동네가 내려다보여서 좋습니다요
청와대 뒷편. 날씨도 맑고 무엇보다 동네가 조용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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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 전시, 재밌었다.

전시를 다 보고나서 블루보틀 삼청점도 들렀다. 평소에는 줄을 길게 서있어서 들어갈 생각도 안했는데, 평일 낮인데다가 시국도 시국인지라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잠시 쉬다가 나올 수 있었다.

모카오레

블루보틀에서는 맨날 라떼만 사먹어서, 좀 새롭게 시도해보자 싶어 모카라떼를 시켰다. 

다만 나는 초코를 싫어하는데 그걸 간과해서........ 초코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도하기 좋을 것 같다. 내가 초코를 안좋아하고 내 입맛에는 좀 달아서 내 취향은 아니었는데, 초코맛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텁텁하지 않고 초코가 진하면서도 갈증나지 않는 맛이어서 커피 자체는 훌륭했다.  다음엔 라떼를 오트밀로 바꿔서 마셔보겠습니다.

 

https://hypebeast.kr/2019/7/blue-bottle-seoul-samcheong-cafe-open

친구가 2,3층에 남는 자리가 있는지 보고와서 '일반적인 좌석의 개념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스탠딩 할 수 있는 키가 큰 조형물(이자 테이블)과 아주 낮고 넓은 원형 테이블 (친구들이랑 이 위에 앉는 것보다 바닥에 앉아서 좌식 테이블로 쓰는게 맞지 않냐고..) 등을 보자마자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빵 터졌다. 

노량진 스타벅스처럼, 회전율을 높이기 위한 방도였다고 생각한다. 

테이블들이 약간 현종오빠 누님의 작품들과 비슷한 감성을 주는 것 같다. (www.instagram.com/dainworks_/)

친구 누나여서가 아니라 작품들이 가진 일관된 이 분만의 감성이 있어서 좋아한다. 그리고 단순히 조형 디자인적 면모만 챙긴게 아니라 꽤 실용적이고 다양한 용도를 가진 것들이 많아서 업로드 됐을 때 '이건 어떤 용도일꼬'하고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가는 전시 후기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