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의자] 좌식과 입식의 혼종, 한국식 앉기를 의자로 형상화해보자

Ipse! 2021. 11. 14. 19:52

이번 글쓰기 소감
: 앞으로 카페에서 혼자 승질내면서 머리 쥐어뜯는 사람을 봐도 '뭐야.. 왜저래..'하고 흘겨보지 않겠습니다.
'아! 작성하던 글을 3번 정도 날렸나보다!'라고 좀 더 너그럽게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갖겠습니다.
(카페 바닥에 쌓인 나의 쥐어뜯긴 머리카락을 보며...)


공간, 건축, 인테리어에서 의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의자에 앉을 때면 내 몸을 의자의 모양에 맞추게 된다. 그래서 의자의 모양새는 공간을 이용하는 양상을 좌우하기도 한다. 의자가 등받이와 앉는 받침이 둔각으로 뒤로 젖혀진 모양새면 자연스럽게 그 곳에 앉은 사람은 지평선보다 위 쪽을 바라보게 된다. 천장이나 하늘로 시선이 향한다. 같은 공간에서도 창문 밖을 보도록 의자를 배치하느냐, 공간 안을 바라보도록 의자를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 공간에 머무르는 동안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달라진다.

어때.. 약간 인간의 몸을 조종하는 흑마법사 같은 느낌이지 않나요?

그래서 의자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바우하우스 게시물에서도 사고싶은 것에 의자가 많았던 것도 이런 이유다.



동양의 공간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동양의 앉기 행위와 의자라는 가구는 어쩐지 본성을 거스르는 느낌이다.

서양에서는 앉는 행위의 거의 대부분의 의자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동양, 특히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좌식문화가 있기 때문에 의자 외의 '물체'나 바닥 같은 '장소'에 앉는 것에 좀 더 거리낌이 없다.

(c) ‘나혼자산다’ 출연진으로 보는 한국인의 독특한 소파 이용법,인사이트,황비 기자


혼자사는 연예인들의 집안 생활을 주제로 한 관찰 예능인 <나혼자산다>에서 출연진들이 소파를 앉는 용도가 아니라 바닥에 앉아 등을 기대는 용도로 사용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좌식문화를 가진 한국인의 독특한 소파 이용법을 보여준다.


입식문화와 좌식문화의 혼종에서 오는 동양에서의 앉기 행위의 특징을 살린 의자는 어떤 모양일까.


한국은 바닥에 방석을 두고 그 위에 다리를 접어 앉는 방식이 전통적이다. 바닥에 바로 앉을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전통 건축이 온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방석은 서늘함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엉덩이가 지나치게 뜨거워지는걸 막기 위해 사용한다. 방석만 있으면 (방석이 없어도) 어디든 앉을 자리가 되기 때문에 입식에 비해 필요한 가구가 적어 공간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동시에 상을 펴면 밥을 먹거나 공부를 하는곳, 이불을 펴면 잠자는 곳이 된다. 즉, 행동에 의해 방의 용도가 규정되는 특징이 있어서 거실, 부엌, 침실의 기능적 구분이 강하지 않다. 최근에는 이런 좌식이 허리나 무릎에 굉장히 무리가 많이 간다는 사실이 공공연해 지면서 한국 내에서도 좌식을 지양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위의 소파만 보아도 오랫동안 좌식 생활을 해 온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고, 그 결과 입식 가구를 들인 집에서 좌식 생활을 하는 모양세가 연출된다.


일본은 코타츠를 애용한다. 코타츠는 전열기구를 탁자 바로 밑에 부착하거나 해당 위치의 바닥을 파서 삽입하는 방식으로 설치된다. 이 열이 빠져나가지 않게 코타츠 탁자 밑을 이불 같은 큰 천으로 감쌌기 때문에 다리를 펴고 따뜻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온돌이 없는 대신에 다다미와 코타츠로 일본 사람들은 추위를 견딘다. 대신에 이는 특정 위치의 바닥에 전열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위치에 고정되기 때문에 한국과는 달리 가구의 특징이 더 강하고, 그에 따라 해당 공간이 다른 곳과 분리되어 규정되는 정도도 더 강하다. 코타츠가 있는 곳은 거실, 가족 공간으로만 사용될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다.



아예 바닥을 파서 다리를 펴고 앉는 것을 넘어서 의자에 앉듯이 다리를 구부려 앉을 수 있는 양상도 있다. 코타츠에서 전열기구를 테이블 밑에 설치하고 바닥은 뚫린채로 비워두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이는 일본에서 사용되는 양식으로, 바닥이 파여있는 각로라는 의미의 호리고타츠(掘りごたつ)이다. 좌식 식당은 엉덩이 따뜻하게 하고 술 마실 때에는 최고의 효용이 발생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게 흠인데 이건 그런 단점은 없겠구나 싶다. 단, 집에 설치했을 때 이불로 가리면 강아지가 들어갔다가 낙상할 수도 있겠다.


호리고타츠의 모양새를 조금 과장한 후 평평한 바닥위에 재연한다고 생각하면 레고나 테트리스 같은 모습이 상상된다. 한 부분이 파였다는 점에서 우물같아 사적이고 은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바닥을 팔 수 없다면 사각형 네모들을 쌓는 것 만으로도 호리고타츠의 요소를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건 호리고타츠의 모습을 단순화한 모습이다.

위의 모습이 이런 네모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자유롭게 분리, 재배치를 상상해볼 수 있다.

긴 네모를 마주앉게 두면 벤치같은 느낌도 든다. 그 위에 네모를 더 올리면 의자 위에 의자, 혹은 의자 위에 테이블처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시민청 같이 사람들이 자유로운 휴게공간으로 사용하는 곳에 두고 어디든 앉을 수 있게 하면 좋겠다. (그런 곳은 그냥 광장형, 아고라형으로 길게 만드는게 더 효율적이지만) 신발을 벗고 이용하되 바닥에 카펫을 깔아서 바닥에도 앉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좋겠다.

나무 판자를 올려 테이블을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앉는 곳과 딱 붙어있기 때문에 테이블의 용도로 쓰일 순 없겠지만 음료를 올려두고 옆에 앉아 앞 사람과 완전히 마주한 채 앉아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사용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두번째는 어쩐지 평범한 벤치와 테이블로 돌아간 기분. 예? 기분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