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녀온 거지만, 아직까지 연장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써보는 전시 후기
1. 믿고 가는 갤러리
가끔 어떤 전시를 보러 갈지 탐색하는 과정이 버거울 때가 있다. 취미 활동인만큼 정보과다 없이 발 가는 대로 편히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고가는 최애 갤러리들을 정해둔다. 그 갤러리에서 뭔가 전시를 한다하면 검색없이 아묻따 보러간다.
최애 갤러리를 정하는 기준은
(1)공간과 장소가 멋진가?
(2) 작가 선정에 나름이 기준이 느껴지는가?
이다.
PKM은 이 기준을 충족하는 최애 갤러리 중 하나다.
내 전시 관람의 목적은 공간이 주는 차분함 속에서 힐링하고, 전시된 작품들로부터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고민을 일생을 바쳐 치열하게 사색하고 또 자기만의 방식으로 형상화해온 사람의 노고를 느끼며 ‘아 이런 주제의식, 고민, 방식도 있구나'를 알아가는 데에 있다.
그래서 앞서 말한 두 번째 기준에서도 자기만의 주제의식과 형상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보이는 사람을 잘 선보이는 갤러리를 좋아한다.
PKM은 동네가 다 내려다보이는 장소도, 본관과 별관의 넓은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도, 선보이는 작가도 항상 만족스러워서 나만의 믿가갤에 속한다.



2. 추상화
윤형근 화백은 막 학기에 들었던 동양화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에서 처음 접했다.
나는 추상화를 좋아한다. 의도를 단박에 이해하기 어렵고, 사실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관람하는 경우도 많지만 구체적인 형상이나 현실적인 광경이 묘사된 그림은 어쩐지 부담스럽다. 목적이 정해진 형상은 일상에서 매일같이 보다 보니 일종의 일탈적 취미 공간인 전시장에서 만큼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추상적인 광경을 접하고 싶은 걸까? 이것도 내 개인적인 헤테로토피아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3. 윤형근 화백
특유의 검은색을 들여다보면 색이 굉장히 오묘하다.
개인적으론 굽기 전 돌김.. 의 색감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꼈다. 돌김은 완전 검은색도 아니고 약간 푸른빛을 띠는데 딱 그런 오묘한 색상이다. 윤형근 화백의 트레이트 마크로 '청다색'이라고 불린다. 바다의 청색과 땅의 검정색이 섞였다는 의미라고 한다. 적절한 이름이다.

3-1.
사진으로만 볼 때엔 배경은 따로 칠한 것인지 아니면 본래의 캔버스 재질을 그대로 살린 것인지 궁금했다.
직접 보니 거치고 날 것의 종이 느낌과 청다색끼리 겹치거나 흘러내리는 질감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4. 공간? 장소?
별관과 본관 2층 공간과의 합이 좋다. 무엇보다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별관의 마당 뷰가 가장 좋다.
별관 지하에서는 작가노트를 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하나씩 보는 것을 추천.
난 이 동네가 너무 좋다. 풍수지리에 무진장 신경 써서 골랐을 궁세권의 역량인지 지평선으로 하늘과 산이 보이는 높이가 낮은 동네가 참 좋다. 재개발이랍시고 저층 건물들을 갈아엎을 여지가 적은 동네라 다행이다.
(여담이지만 부시고 다시 짓는 걸 도시재생으로 부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재생은 이전 모습을 바탕으로 살아나는 거잖아. 차라리 도시 환생이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5. 스케일
사실 해당 전시에서는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은 없었지만, 확실히 작품을 실제로 보면 좋은 것은 사진으로만 볼 때에는 느껴지지 않는 스케일과 압도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갤러리에서 보는 거대한 캔버스를 좋아하는데, 일상 스케일을 벗어나는 사이즈와 내 몸의 스케일의 대비에서 오는 압도감을 좋아한다.
이전에 태하 언니와 한강 다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고가도로 밑에 의자 하나를 가져다 두면 거대한 건축시설물의 스케일과 인간의 스케일의 대비가 극명해져서 거기서 오는 압도감과 일종의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두고두고 떠올라서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이건 스케일 대비!'하고 언니가 생각난다. (언니♥ღ)
6. 기타 감상
이 전시가 맘에 들었던 사람은 이응노 화백과 김환기 화백의 작품도 좋아할 것 같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내가 세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다.. 켁 (알아보니 김환기-윤형근 화백은 사제지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나?)
개인적으로는 초기 작품도 보여주면서 후기의 정체성을 확립해 온 과정을 담아냈어도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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