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공간] 루이비통 2018 크루즈 패션쇼 / 교토 미호뮤지엄 The Louis Vuitton Cruise 2018 Fashion Show

Ipse! 2022. 8. 8. 02:40

https://youtu.be/UzIUQeoG-NQ

교토 인근의 미호뮤지엄에서 진행된 루이비통의 2018년도 크루즈쇼 영상 - 조금 소름 돋을 정도로 좋았다.

나는 패션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기획과 공간마케팅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제품-패션쇼-쇼룸 나아가 문화로 드러내는 방식에는 관심이 많았는데

럭셔리 브랜드들이 원가를 훨씬 상회하는 고가의 상품을 내놓고 꾸준한 인기 속에 팔 수 있는 건 한 번의 컬렉션과 하나의 상품에 들이는 기획력과 기획된 스토리를 알릴 수 있는 마케팅 파워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단순히 고가의 사치품에 대한 구매력을 과시하는 것이 명품 소비의 주 동기였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반적인 소비수준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 명품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부터는 '상품과 '문화'를 소비하는 태도를 보이는 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Youtube의 인기 컨텐츠인 명품 하울에서도, 단순히 상품만 소개하는 영상과 차별성을 지니기 위해 브랜드와 상품에 관한 스토리텔링, 문화를 같이 소개하는 채널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몇천만원 하울과 같이 경제자본만을 과시하는 영상에서는 굳이 문화적 요소까지 보여주진 않는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세 가지 자본인 경제 / 사회 / 문화 (그리고 캐서린 하킴의 매력자본까지) 중 경제 자본 뿐만아니라 문화 자본을 과시하면서 소비를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차별적 우위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러한 흐름이 재밌어서 하이엔드 브랜드들의 쇼룸과 쇼를 몇가지 찾아봤는데, 루이비통은 유난히 쇼를 구성하는 요소들 (무대, 음악, 모델, 옷, 장소 등) 간의 전체적인 조화가 좋았고, 쇼를 통해 정체성을 단박에 전달받는 느낌이 좋았다. 그 중에서도 미호뮤지엄에서의 쇼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정체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최고의 장소 선택, 그 장소의 특성을 잘 활용한 기획, 그리고 고퀄리티의 영상물을 보여준다.


미호뮤지엄은 일본 교토의 시가시현의 (지브리에 나올 듯한) 숲 속 깊은 곳에 위치한 뮤지엄으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설계자로 유명한 I.M.페이가 설계한 곳이다.

출처: 나노기의 추억은 방울방울 ( https://nanoki71.blog.me/20134746792 )
출처: 나노기의 추억은 방울방울 ( https://nanoki71.blog.me/20134746792 )
출처: 나노기의 추억은 방울방울 ( https://nanoki71.blog.me/20134746792 )


버스를 타고 한참을 오르고서도 긴 터널을 지나야만 등장하는 비밀스럽고 웅장한 이 미술관은 우리나라에선 무릉도원으로 통하는 도원향 이야기, 즉 도원명의 <도원일기>에서 모티브를 받았다고 한다.


도원향은 한 인간이 우연히 방문하게 된 신선들의 천국으로, 복숭아 나무가 만연한 지상 낙원이다. 그 곳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나와보니 수십년의 시간이 흘러있었고 다시 찾아가려 했지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인간은 갈 수 없는 낙원이 도원향이다. (잠시 그림 얘기를 하자면…. 사진은 안견의 몽유도원도. 도원향을 다룬 그림 중 제일 좋아한다. 좌측 평원은 현실 세계, 중앙은 험난한 동굴, 우측에는 복숭아꽃이 핀 무릉도원의 모습이 보인다. 와유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와유 그림은 내가 마치 저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상상하면서 보면 정말 재밌다. 평원에 있는 마을에 사는 내가 어쩌다 험난한 동굴로 길을 잘 못 들였다가 도원향을 발견한다든가... 가만히 그림 바라보면서 상상해보면 약간 그림이 묘하게 보인다. 잡아당기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흔한 문과 오덕후의 감상인가?)


즉, 미호뮤지엄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담은 건축작품이자 자연과 건축의 예술작품이다.
그리고 이 포인트들은 여행의 정취와 문화유산 / 예술과 건축의 만남 / 수려한 자연환경을 추구하는 루이비통의 메세지와 일치한다.

실제로 공식 크루즈쇼 영상과 당시 컬렉션을 보다보면 장소와 브랜드의 만남이 더 와닿는다.
1) 크루즈 쇼 (사진출처: 첨부된 공식 영상)


2) 컬렉션 (사진출처: 공식홈페이지)
"의상들은 사무라이, 구상 판화, 수묵산수화, 의식용 드레스, 무술 케이코기(연습복),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극작법, 혹은 키타노 타케시 감독의 영화적인 멜랑콜리를 떠올리게 한다. 도시적 팬츠수트와 건축적인 튜닉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정신을 담아 디자인되었다. 저지와 가죽 혼방의 스웨터는 일본 무사들의 갑옷을 상기시키며, 이브닝 드레스는 노 극장의 금빛으로 빛난다. 섬세하게 제작된 오비 벨트는 테이퍼드 팬츠의 기본 구조를 이루고, 핸드백과 클러치는 가부키 가면을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
https://kr.louisvuitton.com/kor-kr/articles/cruise-show-2018-details

*무술 케이코기
동양권 무술 도복을 얘기하는 듯. 도복의 허리끈 형태가 비슷하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는 한국에서 진행한 쇼와 서울 쇼룸을 보면 이 브랜드가 같은 문화권에 속한 다른 국가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지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이건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는 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