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공간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을 정리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 이론에서 파생된 나의 잡 생각을 떠벌릴 예정입니다.
데카르트 좌표계
데카르트가 발명한 좌표 개념은 사람들의 공간 관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미 유명하듯이, 좌표는 데카르트가 누워서 천장을 날아다니는 파리의 위치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방법을 고심하다가 발명한 개념이다. ( 사유가 장난아님. 언행일치가 대단하다. )
파리는 단순히 천장 평면 뿐만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비행하고, 한 곳에 고정적으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이 움직임도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X값의 변화에 따라 Y값도 변하는 좌표계가 등장한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건 좌표계의 등장이 사람들의 공간 관념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이다.
근대 이전에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소' 이념이 주된 사유였다. 장소는 개별 물체가 차지하는 자리를 의미한다. 그 바탕에는 각각의 물체들이 고유의 방향성을 지녀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데카르트의 좌표계는 이처럼 개별적이고 고유하며 고정된 장소 개념에서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입체적인 공간 개념으로 인식을 전환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한편 파리의 위치를 일반화하려는 시도에서는 시간을 지배하고자 하는 근대 과학의 시작이 보이기도 한다.
"근대 과학은 무엇보다도 시간을 독립 변수로 삼으려는 열망에 따라 정의되어야 한다" _ 베르그손, 앙리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파리의 '순간적인' 위치를 파악해 좌표라는 객관적인 수단으로 표현함으로써 임의의 순간, 즉 시간을 독립변수로 두고 공간을 시간에 따라 결정되는 종속 변수로 표현했다.
장소와 공간의 차이
장소와 공간의 차이와 관계에 대해 논하는 책은 매우 많다. 대부분 철학 저서로 분류되는 듯 하다.
내가 생각하는 장소는 구체적이고, 특정한 개념이다. 즉, 장소라함은 약속장소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정확한 광경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고, 고정되고 특정한 위치가 있어야 하고, 이를 다른 사람과 착오 없이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인 수단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공간은 추상적이고 총체적이다. 공간은 약속장소가 될 수 없다.
내가 어떤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면, "망원동에 위치한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에 갔다"와 같이 단순하게 말할 수 있다. 누군가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인가?"라고 물으면 그냥 그 위치와 장소의 이름을 말하면 된다. 간단하다. 그러면 그 장소를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공간을 구성하는 각종 요소들, 특히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아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구나?'하며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과는 장소에 대한 정보만으로는 교감할 수 없다. 그냥 내가 말한 장소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전달될 뿐이다.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좀 더 어렵다.
공간? 좋아하는 장소를 대답해야 하나? 좋아하는 공간의 느낌을 설명해야하나? 싶다.
실제로도 공간으로 화두를 받으면 특정한 장소를 직접적인 답변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나는 주변 장소와 잘 어울리고 창과 가구배치에 여백이 많은 시원시원한 공간이 좋아. 거기서 집중이 잘돼. 그리고 백열등 조명이 너무 싫고 노랗고 어두운 조명이 좋아. 아! 앤트러사이트 서교점 가봤어? 거기가 약간 그래. 마당이 넓어서 카페보다는 전원주택 같거든...블라블라..."와 같이 그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시킨 후,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특정한 장소를 레퍼런스로 제공하게 된다. 사고의 흐름이 from 구성요소 to 전체로 흐르게 된달까.
그래서인지 어디가서 섣불리 '난 공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하기가 점점 어렵다. 백이면 백 '공간? 그게 어떤 느낌이지?'라고 반문을 받게되는데 그때 구체적인 장소를 제시하고 그 장소에 기반한 경험을 공유하지 않으면 굉장히 막연하고 추상적인 관심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나는 예술이 좋아' '나는 선함이 좋아'처럼 너무 광활하고 막연하게 다가온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공간은 매력적이다.
장소처럼 딱 떨어지진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나 그 틈에 인간의 욕망이 자리잡는 양상에 환장한다. 권력에 대한 욕망, 소유에 대한 욕망, 이상세계에 대한 욕망...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본인을 둘러싼 공간에 표현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장소'에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인간의 욕망이 '공간'을 매개로 하면 더 잘 와닿는 이유는 인간의 감정이 지닌 변동성과 유동성이 고정된 천장 얼룩보다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파리와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데카르트의 공간론이 시간을 독립요소로 삼은 종속변수로서의 공간을 다루고 있다면, 시간을 포착하지 않은 공간은 어떤 양상일까?근대적 시공간 개념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미래의 시공간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거기에는 어떤 유형의 욕망을 담을 수 있을까? (엠비티아이 N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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