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가 공간을 느끼는 두 가지 감정 : 광활함과 과밀함
공간과 광활함은 인구밀도와 과밀함처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단어입니다.
하지만 넓은 공간이 항상 광활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며, 높은 밀도가 반드시 과밀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광활함은 <자유롭다>는 느낌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자유는 공간을 암시합니다.
자유는 행동할 수 있는 힘과 <충분한 공간>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 개방된 공간에서는 장소에 대한 열망을, 안전한 장소에서는 광활한 공간에 대한 열망을
▶공간을 이동하는 경험을 어떤 수단으로 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확장'일수도, '공간의 축소'일수도 있다. 가령, 내가 자전거를 타거나, 스포츠카를 운전하거나, 경비행기를 조종해서 공간을 전에 없이 빠르게 이동할 때에는 자유를 느끼겠지만
열차나 여객기에서 '좌석에 벨트로 고정된 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수동적으로 운송되는 그저 사치스러운 운반용 상자일 뿐'이라면 아무리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해도 공간의 확장성을 느낄 수 없다.
그러고보면 비행기에서 이코노미석과 퍼스트 클래스 좌석의 가격 차이는 자유도에서 온다고 말해야 더 정확하겠다.
퍼스트 클래스는 <단순히 넓고 편한 좌석>보다는 <가동범위, 즉 행동의 자유도가 높은 좌석>을 제공함으로써, 구매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덜 통제받고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판매한거다.
(2) 누군가에게는 광활한, 누군가에게는 황량한
광할하다는 개념은 상대적이다. 주변 환경과의 대조를 통해 강화되기도 하고, 문화와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어떤 환경이 그 누군가에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허락한다면 그에게 그 환경은 광활한 것이 됩니다."
가령 문학에서 대체로 미국의 평원은 자유와 기회의 상징이라면, 러시아의 평원은 황량함과 인간의 나약함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최인운 소설 <광장>과 <구운몽>을 읽으면 굉장히 재밌다. 최인훈은 필시 공간에 기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 구운몽은 특히 내가 공간을 '밀실'과 '광장'으로 분류해서 보는 집착을 갖게 해준 책인데, 밀실(안락vs구속)에서의 망상적 환각과 광장(자유vs감시)에서 다수의 표적이 되어 쫒기는 불안감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1인칭 시점으로 보는 의식의 흐름 기법에 빠른 장면 전환으로 소설을 보면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감각을 처음 받아봤던 소설이다. 지금 읽으면 또 어떨지 궁금하네.
(3) 공간은 생존의 조건이자 심리적 욕구와 부와 권력의 대상이다
공간은 생물학적 생존을 위한 조건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안락하게 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공간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결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자원으로서의 공간은 문화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 "도대체 인간은 얼마나 많은 땅을 필요로 하는가?!" _톨스토이
욕망의 수준은 확실히 사람의 <공간적 적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욕망은 문화적으로 형성됩니다.
권력에 대한 갈증은 특히 돈이나 영토와 관련된 것일 경우에는 채워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재정의 증가와 영토의 확장은 기본적으로 착안하거나 추정하는 데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부가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 이 문장 이해 안된다. 돈이나 땅에 대한 욕망은 쉽게 채워지지 않고 계속 커지기 때문에 충족될 수 없다는 맥락인건 이해되는데, "추정하는 데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는 단순 부가적 개념"이라는 표현은 왜 쓴거지?
[독해에 어려움을 겪을 땐 엄마찬스]
투안이 의도한 바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의 해석에 공감한다.
권력의 핵심은 상상력이 필요한 '영향력 행사'가 핵심이기 때문에,
땅과 돈 같은 물질적인 영역은 권력의 부가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그래서 돈과 땅을 아무리 늘려봤자 핵심인 '영향력'이 채워지지 않으면 권력에 대한 갈증은 채울 수 없다는 것.
공격적인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국가에게도 광활함이라는 느낌에 동반되는 만족감은 더 많은 공간을 획득함에 따라 사라져가는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4) 타인이 자신을 관찰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공간적으로 구속받는다고 느낀다
지금까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은 채 광활함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고독은 방대함이라는 느낌을 얻기 위한 조건입니다.
혼자 있을 때 인간의 사유는 자유롭게 공간을 떠돕니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면 동일한 곳에 자신들의 세계를 투영하는 그들을 인식하게 되면서 나의 생각은 억제됩니다.
▶ 예전부터 공간 공부를 하면서 하나의 인간엔 하나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갑자기 그 이미지가 떠오르는 문장이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고독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설령 단 한 명일지라도 다른 사람과 한 공간에 같이 있다는 것은 그 공간을 축소시키고 개방성을 위협하는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사색 혹은 집중이 필요한 공간에서는, 서로 암묵적으로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당신을 의식하지 않아요'라는 모션을 보여주곤 한다.
과밀함은 자신이 관찰되고 있다는 일종의 인식입니다.
▶ 사람은 밀실에서만 살아가도 미치고, 광장에서만 살아가도 미친다.
시골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있는 도시로 떠나는 청년들. 고립되어 서로가 서로를 다 알고 있고, 경제적 영역에서의 기회가 부족한 시골에서의 삶. 도시는 꿈을 펼치고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는 장소. 역설적으로 도시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시골에 비해 덜 과밀하고 덜 답답하다고 여겨졌습니다.
▶ 물리적 과밀함은 더 높을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서 '관찰되고 주시되는' 감각이 적은 도시가 심리적으로는 더 광활하게 느껴질 수 있다.
▶ 스타벅스에서 가장 먼저 차지되는 좌석은 '등 뒤에 벽을 두고 + 카페 내부가 한 눈에 보이거나 or 창문 밖을 볼 수 있는' 자리다. 가장 인기 없는 좌석은 카페의 정중앙 덩그러니 놓인 좌석. 이건 과거에 요새를 지킬 때 등 뒤를 막고 적의 접근 여부를 살피던 습관이 남은 채로 진화됐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이런 좌석을 선호하는 특성은 여자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출처: 한교수님ㅎ). 특히 창문 앞자리를 선호한다고. 맞는 것 같다. 난 일단 그런 자리가 비어있지 않은 카페는 안 들어간다.
(5) 과밀함이 즐거움이 될 때
군중은 우리를 활기차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이런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뉴욕 왓킨스 글렌 야외 록페스티벌에 대한 뉴욕타임즈 보도 "..확실히 음악이 그 페스티벌에 사람들을 끌어들인 유일한 흥행요소는 아니었습니다. 잔뜩 모여든 군중 자체가 페스티벌의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과밀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확장됩니다.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협력할 때는 다른 사람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선한 본성은 공간의 사용이 아닌 이기심 없는 행동을 통한 공간의 창조이기 때문입니다.
▶ 한정된 공간을 각 개인이 자기 몫을 위해서만 나눠서 사용하고자 하면 딱 물리적 공간만큼의 효용만 창출된다. 100의 공간을 두 사람이 50씩 나눠가지면 50+50=100의 가치만 누릴 수 있다. 하지만 100의 공간을 50씩 나눠가지되, 각자 자신의 땅의 10을 공용공간으로 내어주면 내 땅 50에 상대방 땅 10을 더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총 효용은 60+60=120이 되어서, 땅이 가진 물리적 가치인 100보다 더 큰 효용을 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기심 없는 행동을 통한 공간의 창조'는 이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6) 우리의 욕망에 응해줄 때 세상은 광활하게, 우리의 욕망을 좌절시킬 때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고의적으로 나를 방해한다고 느낄 때 과밀하다고 느낀다.
- 경기장은 도로보다 훨씬 더 인구밀도가 높지만 우리가 공간적 제약 떄문에 실제로 불쾌함을 느끼는 곳은 바로 도로입니다.
서로 상충되는 활동 또한 과밀한 느낌을 유발한다.
- 노동자 계층 사람들의 혼잡스러우면서도 가족적인 저녁 시간 이미지
▶ 혼잡스러움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혼잡스러워 보이는 거실에서 따뜻함과 관용의 안식처가 창조되기도 합니다.
투안은 이를 '과밀함에 대한 성공적인 적응'이라고 표현한다.
세계가 우리의 욕망에 응해줄 때 세계는 광활하고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욕망을 좌절시킬 때는 비좁고 갑갑하게 느껴집니다.
에스키모인들은 북극의 해안에 펼쳐진 광활한 개방된 공간에서 작은 집단을 이루며 사냥을 하고 살아갑니다. 출퇴근 시간에 인간성을 짓누르는 듯한 도시의 과밀함과 도시인들의 스트레스틑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경험일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키모인들이라고 해서 과밀함과 스트레스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기근으로 인해 기아가 극심해지면 그들도 과밀함을 경험합니다.
▶ 투안은 항상 문화권에 따라 같은 개념에 대한 인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과 모든 인식은 상대적이라는 점에 유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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