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공간과 장소> 이 푸 투안 (4/14)

Ipse! 2024. 9. 21. 15:30

4. 깊숙하면서도 고요한 애착의 장소, 고향

 

장소는 저마다 크기가 다릅니다.

세계 어느 곳이든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간적 체계는 장소 중심적이기보다는 인간 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인간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뜻입니다.

 

[종교적 공간 - 성스러운 공간]

고대도시 : 애초부터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생각은 신들과 함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태곳적 창조가 일어난 곳을 점유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고대종교 : 삶이 불확실하고 자연이 적대적인 것처럼 보일 때, 고대인들에게 신은 살아가는 힘을 하사할 뿐 아니라 삶 자체를 보호하기도 하는, 자연과 사회의 질서를 보증하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토속신을 믿느냐, 보편종교(기독교,이슬람교,불교 등)를 믿느냐에 따라 장소관도 달라진다.

토속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 장소에 묶이지만,

보편종교는 모든 것이 전지전능한 신에 의해 창조되고 주관된다고 믿기 때문에 특정 장소를 더 우위에 두지 않는다.

▶'성지'는 더 우위에 있는 공간은 아닌건가? 하긴 성지는 순례의 대상이지, 점유의 대상이 아니니까.

 

뿌리내림rootedness은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에게는 하나의 이상이었습니다.

자신의 친족에 대한 애정과 이방인에게 보이는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선 적대감이야말로 특정한 장소와 결부된 종교들에게서 공통으로 보이는 특징입니다. (...) 재단 또는 가정의 화로는 정착생활을 상징합니다. 의무와 종교에 따라 가족들은 무리를 지어 그 제단 주변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그 가족은 제단 못지않게 땅에도 매이게 됩니다. (...) 고대사회에서 땅과 종교는 대단히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서 한 가족은 그 중 하나만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디든 마음 한구석 둘 만한 곳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에게는 토지 소유에 대한 그 어떤 법률도, 영토 경계에 대한 그 어떤 엄격한 관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영토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바로 그들의 점유지와 활동 구역입니다.

 

풍경은 개인적이면서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부족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 원주민은 정체성의 혼란, 즉 사물의 전체적인 구성 안에서 장소에 대한 혼란을 느낄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을 떠받치는 신화들이 그가 보고 만질 수 있는 바위와 샘들만큼이나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조상이기도 한, 숭배하는 불멸의 존재들의 삶과 행적을 말해주는 옛이야기가 자신의 땅에 기록된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마치 그가 살고있는 곳 전체가 그에게는 하나의 가계도인 것과 같습니다.

 

현대사회에도 나름의 유목민들이 있습니다.

이 뿌리 없음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영구적인 장소를 갈망할까요? 그렇다면 그러한 갈망은 어떤 식으료 표현될까요?

배를 타는 선원들은 바다를 떠도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들은 바닷가 어딘가에 일종의 본거지를 두고 싶어 합니다. 혹 가능하다면 자신들의 짐이라도 내려둘 수 있는 곳 말입니다. 그들이 어디를 떠돌든 마음을 둘 만한 곳, 가구를 놓을 위치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하루의 다른 시간에 그곳 주민들이 무엇을 하는지 상상해볼 수도 있고, 그림엽서를 보낼 수도 있고, 소소한 수집품을 가져다둘 수도 있는 곳. 그리고 언제고 돌아올 수 있고, 또한 환영받을 수 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고향, 고요한 애착의 대상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향'에 대한 감각은 전혀 다른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기억나는 청소년기 대부분은 일산에서 보냈고, 성인이 되면서는 다시 서울에서 생활했으니 '고향'이라고 느낄만한 장소는 없었다. 그냥 부모님이 있는 곳, 그리고 익숙한 공간 정도. 다만 그 익숙함도 졸업한 지 한참된 대학교 근처를 오랜만에 방문했을 때의 익숙함과 새로움의 결합과 큰 차이는 없어서 특별히 '고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장소는 없다.

 

그런데 대학에서 만난 지방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대학생이 되면서 서울에 온 친구들은 '고향'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확실히 관념적인 그 것과 유사하다. 다만,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나같이 '고향'의 개념이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다. 고향에 대한 향수가 특정 지역이나 장소에 얽혀있다기 보다는, '같은 고등학교', '같이 학교를 나온 친구들', '같은 단지 친구들'과 같이 집단에 의해 얽혀있는 느낌이 강해서 특정한 장소에서 향수를 느끼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 그 곳을 떠나와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큰 차이일 것 같다.

그러면 서울에서는 어떤 공간이 어떤 사람에게 '고향'이 주는 애착과 향수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고향에는 그곳만의 랜드마크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눈에 잘 띄면서 공공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특징이 있지요. (산, 성지, 전쟁터 또는 묘지 등)

이처럼 눈에 잘 띄는 상징물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고취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그것들 덕분에 그 장소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와 충성도가 높아집니다. (잠실 롯데타워, 한남 유앤빌리지)

 

그런데 아주 명백한 개념을 담고 있지 않더라도 고향에 대한 강한 애착심은 생겨날 수 있습니다. (...) 그저 친근함과 편안함, 보살핌과 안전에 대한 확신, 소리와 맛에 대한 기억, 공동의 활동과 세월이 쌓아온 아늑하고 기쁜 추억으로도 깊은 잠재의식 같은 고향에 대한 애착심은 생겨날 수 있습니다. - "고요한 애착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