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체호프 단편선> 안톤 체호프

Ipse! 2026. 3. 23. 14:01

일본의 단편선과 러시아의 단편선의 차이는 …
둘 다 인간 심리를 조명하는데,
일본은 내면의 심리 묘사에 집중하고 (너무 세심하게 파고들어서 찝찝한 느낌이 들 정도로)
러시아는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심리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러시아 문학의 특징인지 체호프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짤막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서 비웃고 비꼬는 듯한 해학이 보이는 점이 매력적이다. 다만 이게 음침하고 음습하게 비아냥거리는 느낌이 아니라 ‘어랍쇼?‘하고 호방하게 비웃는 느낌. 약간의 시니컬함과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좋았다.

뭔가 일상에서 느꼈을 법한 ’기분‘을 각각 하나의 단편으로 풀어낸 글의 모음집 같은 느낌을 받았다. 보통은 소설을 읽으면 이야기에서 감상이 나오는 느낌인데, 체호프 단편선은 감상에서 이야기가 나온 느낌. 잘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어찌됐든 그렇게 역추적하는 재미로 술술 읽혔다.

읽게 된 계기는 <관리의 죽음>편 …
하급 관리가 상급 관리에게 실수를 한 후 스트레스로 냅다 죽어버리는 전개(?!)에 충격 받고 바로 읽었다.


<공포>

   “말 좀 해보시오. 친구. 무시무시하거나 비밀스럽거나 환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어째서 실제의 인생으로부터가 아니라 꼭 유령이나 저승 세계에서 소재를 취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으니까 무서운 거지.”
   “아니 그렇다면 인생은 이해가 되시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부함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내 행동들 중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들어요.“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런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인가를 하지만 내일이면 벌써 내가 왜 그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돼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각들을 내가 얼마나 겁내고 있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나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일에 몰두합니다.”


<베로치카>

“이 집, 이 숲, 이 공기가 싫어요.
이 끝없는 평정과 목적 없는 삶을 참을 수 없어요.
(…)
그러나 저는 일과 삶의 필요로 인해 냉혹해진 사람들이 고뇌하며 사는 바로 그 커다랗고 습기 찬 집들이 좋아요 …..”
그는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것은 영리한 인간들이 종종 과시하는 그런 이성적인 냉담함도, 자아도취적인 바보의 냉담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영혼의 무기력, 아름다움을 깊이 지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일 뿐이며 또한 빵 한 조각을 얻기위한 지저분한 싸움과 독신의 하숙방 생활, 그리고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얻어진 조로증에 다름 아닌 것이다.